VR은 과연 당장 닥친 미래 먹거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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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은 과연 당장 닥친 미래 먹거리일까?
  • by 최호섭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를 다녀 온 지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머릿속에는 가상현실에 대한 고민이 맴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VR은 우리 IT업계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미래 먹거리'일까요? 그 동안 그 자리에 후보로 올랐던 기술들을 꼽아보자면 일단 3DTV가 있었지요. 근래에는 드론이 있습니다. 그 언젠가는 안드로이드 기반의 냉장고, 세탁기였던 때도 있고, 스마트TV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VR이 올랐습니다. 언제는 열심이지 않았겠냐만 이번에는 정말 '사활을 걸었다'는 느낌이 다 들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신제품 갤럭시S7보다 오큘러스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에 더 공을 들이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언팩 행사 전반을 오큘러스 VR로 도배했습니다. 아마 천하의 마크 저커버그라고 해도 동시에 5천여 명이 오큘러스 VR을 쓰고 있는 현장을 본 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VR 플랫폼에 빨리 올라타는 전략

 
삼성이 준비한 것에 비해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VR의 중요한 플랫폼이고, 삼성전자는 좋은 하드웨어 파트너다'라는 정도의 건조한 인사만 풀어놓았지요. 마크 저커버그가 참석했다는 것 자체는 큰 일이지만 삼성과 국내 미디어들의 뜨거운 반응에 비하면 다소 건조했던 것 아닌가 되돌아 봅니다.
 
뭐 이건 삼성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LG전자는 발표에 구글의 스티브 몰렌코프 스트리트뷰 총괄을 초대해 파트너십을 강조합니다. 360도 촬영이 가장 잘 적용된 사례가 바로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뷰이기 때문이지요. LG전자의 VR360도 사실상 '고급형 카드보드'에 가깝습니다. LG는 안드로이드 시장에 다소 미적거리면서 늦게 들어온 편이지만 넥서스 시리즈를 내면서 요즘 구글과 가장 친한 회사로 꼽힙니다.

 
바이브(Vive)를 발표한 HTC도 다르지 않습니다.게임 플랫폼인 밸브의 스팀과 손을 잡았습니다. 안드로이드 시장에서 가장 우선권을 쥐었지만 구글과 파트너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도 HTC가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이유로 꼽히기 때문에 HTC 역시 VR을 확실히 다질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대체 스마트폰과 통신, 그리고 VR이 무슨 관계일까요? 관계야 콘텐츠의 유통, 빠른 네트워크 등을 이유로 들면 이유를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사실 MWC라는 전시회 입장에서 보면 생뚱맞은 느낌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건 스마트폰 업계가 VR에 공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파격적인 성능의 새 프로세서가 나온 것도 아니고, 디스플레이 기술 역시 현재로서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안드로이드는 5.0 롤리팝 이후 완성 단계에 접어 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통신 기술이 새로운 답을 주지도 못했습니다. 더 빠른 LTE는 관심 밖의 일이 됐고 5세대 이동통신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쉬어가는 통신 시장의 돌파구는 VR인가

 
통신 단말기를 만드는 게 일인 기업들이 사실상 '본질적인 할 일'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하지만 신제품은 내놓아야 했고, 지금으로서 돌파구는 묘하게도 통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운 '가상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VR이 쏟아져 나왔고, 마치 통신 업계의 미래가 가상현실에 달려 있는 것 같은 전망도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과연 VR이 스마트폰 업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이 가상현실 시장을 독점하고, 그 안에서 특정 하드웨어 기업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아니라는 쪽에 조금 더 무게가 기울어집니다.
 
일단 하드웨어 기업들은 과거 안드로이드의 정착을 떠올리며 '대세'와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삼성전자는 페이스북 오큘러스를, LG전자는 구글을, HTC는 스팀을 파트너로 잡았지요. 물론 이 관계는 이번 MWC가 처음은 아닙니다. 다만 그 파트너십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킥 오프'라는 분위기는 확실했습니다. 당장 꼭 필요한 기술이라는 점도 적지 않게 강조했지요.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VR이 지금 당장 큰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 느낀 반응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부스에 마련된 VR 체험관들은 30분~1시간을 기다려야 한번 써볼 수 있을 만큼 붐볐습니다. 지루한 전시관 안에서 가장 재미있는 콘텐츠였던 건 사실입니다. 반응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보고 나온 분 들의 또 다른 반응은 ‘재미 이외에는 뭔가’라는 반응과 ‘이걸 두 번 볼 필요가 있을까?’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번 정도 지나가는 재미로는 좋지만 내가 기기를 구입해서까지 쓸 만한 콘텐츠냐는 의미였습니다.
 
 

차분히, 함께 키워가야 할 플랫폼 산업

 
사실 VR이 가장 주목받을 분야는 개인용보다는 산업용에 가깝습니다. 산업 현장이나, 가상의 시나리오를 실제 결과물로 만들기 전에 체험해보는 것이지요. 액센츄어나 화웨이, 노키아 등은 VR을 그렇게 사례 발표에 활용했습니다. 재미보다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결과물을 직접 미리 체험해볼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요. 여기에는 기업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겠지만 재미를 위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 당장 지갑을 열라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실제로 마크 저커버그는 MWC 이후 인터뷰를 통해 VR이 언젠가 확실히 올 미래 기술이지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플랫폼 사업자는 느긋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느긋하다기보다는 조급하게 열 수 있는 시장은 아니라는 쪽에 가깝겠네요. 콘텐츠 제작쪽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VR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실험 영화는 가능하겠지만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고, 이용자가 많지 않으니 드라마나 영화처럼 상업 콘텐츠가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긴 가지만 천천히 간다는 것이지요. 하드웨어 업체가 촬영 장비와 시청 장비를 서둘러 공급하는 건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반가운 일이지만 VR 역시 엄연히 콘텐츠 비즈니스인 만큼 하드웨어가 먼저 주목받으면 곤란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3DTV지요. 영화 ‘아바타’가 키워낸 3D 콘텐츠의 인기를 가정으로 들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게 3DTV입니다. 교체 수요가 적은 TV로서는 3D가 TV를 바꿀 강력하고 달콤한 콘텐츠였습니다. 하지만 유통 플랫폼이 무르익지 않았고, 콘텐츠도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꾸준히 나오긴 하지만 폭발적인 성장세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콘텐츠와 플랫폼, 그리고 표준 전송 규격이 무르익기 전에 하드웨어 전쟁이 터졌지요. 제조사들은 3DTV가 꼭 필요하다고 힘을 주었고 소비자들은 무리해서라도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3D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거위였지만 하드웨어 업계가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고, 소비자들은 ‘볼 게 없다’고 반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결국 ‘속았다’라는 판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여기에서 주어를 3D에서 VR로 바꾸면 지금의 상황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직 익지 않은 시장을 너무 과열시키면 소비자들은 실망하게 마련이고 나중에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그거, 예전에 해봤더니 별로야”라는 반응으로 이어질까 하는 걱정입니다. 게다가 아직 하드웨어가 가야 할 길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VR과 AR, 그리고 이를 섞은 MR(mixed reality)는 앞으로 우리의 생활을 많이 바꿔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느 한 회사가 주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엔터테인먼트, 게임, 산업이 고르게 사례를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하드웨어와 플랫폼이 차분히 성장하게 될 겁니다. 그게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 시장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제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 가상현실을 현실에 올리는 과정을 즐겨보면 어떨까요. 서두르지 않아도 VR은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리뷰전문 유튜브 채널 더기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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