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셰프>, 당신에겐 SNS에 익숙한 아들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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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셰프>, 당신에겐 SNS에 익숙한 아들이 있습니까?
  • by 박찬용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위기는 아무리 비현실적이어도 어딘가 공감할 구석이 있다. 우리가 <인터스텔라>처럼 딸을 구하려 지구 밖으로 나가거나 <레버넌트>처럼 아들의 원수를 갚으려 말 가죽 안에 들어갈 일이 없어도 두 영화는 부모의 정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로 관객과 어느 정도 공감대를 쌓는다. 반면 <아메리칸 셰프>의 위기는 너무 현실적이다. 당신이 중년에 접어들었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처한 위기를 한번쯤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잘 나가는 요리사 칼 캐스퍼(존 파브로)는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메뉴 결정권을 뺏긴다. 게다가 유명한 음식 블로거인 램지 미첼(올리버 플랫)까지 자기의 음식에 악평을 남긴다. 칼은 홧김에 트위터에 가입해 램지에게 욕설을 보낸다. 홧김에 보낸 트윗은 칼의 결정적인 위기가 된다. 그는 SNS를 일종의 문자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트윗은 전 세계로 출판된다. 페이스북의 ‘담벼락(wall)’이라는 말처럼 SNS에 뭔가를 쓴다는 건 전 세계인이 뭐가 쓰여 있나 볼 수 있는 벽에 한 마디를 보태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스마트폰이 작으니까 SNS를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SNS에 올리는 건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에 더 가깝다.

스마트폰과 SNS 서비스가 낳은 온라인상의 의사소통은 기존의 의사소통과 완전히 달라졌다. 의사소통에서의 리듬감, 메시징의 개념, 파급력이 모두 변했다. 모든 메시지는 이론적으로 전 세계에 퍼질 수 있고 이론적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덕분에 SNS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곧잘 실수를 하거나 실수로 자기 바닥을 드러낸다. 이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 보고 계신 독자 여러분은 ‘뭐 SNS같은 거 다들 배우고 할 줄 아는 거 아니요’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인터넷에 익숙한 정도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칼의 실수는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다. 칼은 그야말로 있을 법한 일로 직장을 잃는다. 이름을 내놓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SNS상 실수는 치명적이다.

칼의 직업이 요리사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이제 어떤 ‘콘텐츠’는 결과물만을 말하지 않는다. 잡지 화보 촬영만 해도 동영상 팀이 와서 전후 과정을 촬영한 후 별도의 메이킹 필름을 만든다. 사생활이나 제작 과정도 미디어 상품의 일부가 되면서 요리사도 벽 뒤에 있다가 이제는 카메라가 달린 오픈 키친으로 떠밀린 직종이 됐다. 스타 요리사처럼 예전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 모든 곳에는 명암이 있다. 우리끼리만 일하던 직장이 모두 보는 무대가 되고, 감정적인 말싸움이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는 자극을 무난하게 견딜 수 있는 중년이 몇 명이나 될까? 누군가는 바뀐 세상에 적응하는 데 어려워하거나 실수하지 않을까?

영화는 영화니까 아무튼 칼은 재기에 성공한다. 칼은 마이애미에서 푸드 트럭을 시작하여 결국 멋지게 LA로 돌아온다. 특히 칼을 몰락시킨 SNS가 칼을 재기시킨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다시 비현실의 세계로 들어간다. SNS를 통해 평판을 잃기는 쉽지만 다시 평판을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SNS에 익숙하지 않은 중년이 SNS에서의 성공 문법을 한 순간에 알 리도 없다. 그래서 영화는 그의 아들을 등장시킨다. 영화 속 칼의 아들은 말 그대로 스마트폰을 늘 끼고 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아들은 그 스마트폰으로 아빠의 사업을 다시 일으킨다. 아들은 푸드 트럭의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그 계정을 통해 푸드 트럭의 동선을 중계한다. 여기서 홍보에 쓴 비용은 아들의 밥값 정도에 불과하다.

SNS를 통해 스스로를 알린다는 건 어떤 면에선 [프로듀스 101]을 비롯한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모두가 승자가 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다. 아주 일부는 칭찬을 듣고 누군가는 욕을 먹고 대다수는 기억되지도 못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부끄럽거나 실패하거나 실수가 잘못 편집되며 평판이 더 나빠져도 씩씩하게 나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지금 어른이 된 세대는 이런 식의 리스크와 부담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메리칸 셰프>는 현실적인 위기에 달콤한 소스와 부갈루 리듬을 끼얹어 관객을 즐거운 공복 상태로 몰고 간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이 정도의 행운과 해피엔딩을 문제 삼고 싶을 생각은 전혀 없다. 게다가 이 영화의 현실 인식은 대단히 냉정하다. <아메리칸 셰프>는 훗날 SNS에서의 평판관리를 현실적으로 묘사한 문제작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SNS에서의 실수, 잘못 퍼진 메시지, 기타 등등 와전되고 확산되어 악화된 평판을 일축하는 아주 간단하고 고전적인 방법이 있긴 하다. 압도적인 재능이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선수처럼 축구하거나 ‘오늘밤, 로맨틱, 성공적’의 배우처럼 헐리우드에 뛰어들어 연기하거나 불법 도박이 적발되자 바로 메이저리그로 넘어가 삼진을 잡아내거나, 푸드 트럭에서도 황홀한 맛을 내는 요리사 칼 캐스퍼처럼 엄청난 재능이 있으면 된다. 어렵다고? 그렇다면 SNS에 익숙한 아들을 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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