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이트(Mag-Lite) - 미국식 실용주의와 내구성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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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이트(Mag-Lite) - 미국식 실용주의와 내구성의 산물
  • by 서범근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액션 장면중에 하나로 꼽히는 원화평 무술 감독의 다이나믹한 연출로 만들어진 트리니티의 학다리 발차기 장면이다. 그런데, 우리가 봐야 할 부분은 트리니티의 몸매가 아니라 여주인공에게 무참하게 얻어맞는 경찰들이다. 그들은 오늘의 주인공인 플래쉬라이트를 들고 있다. 전세계 법 집행 기관의 친구 같은 존재 맥라이트다. 


미국식 실용주의의 산물

거무튀튀하고 굵은 쇠몽둥이의 자태, 요즘으로 치자면 미니멀리즘의 전형 같지만 그 모양은 완벽하게 실용성을 바탕으로 만든 디자인이다. 미국에서 만든 제품은 확실히 미국다움이 배어 있다. 세밀하진 않지만 단단하고 강한, 거친 마초적인 느낌이 묻어 난다. 맥라이트는 두랄루민 합금으로 이루어진 몸체에 다양한 사이즈의 건전지를 넣어 작동하는 가장 미국다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플래시라이트 브랜드다.

맥라이트는 건전지 사이즈로 제품을 구분하는 방식이 독특한 브랜드다 . D사이즈 건전지를 사용하는 D시리즈, C사이즈 건전지를 사용하는 C라인, AA사이즈 배터리를 사용하는 미니 라인, AAA사이즈 배터리를 사용하는 솔리테어 라인이다. 제품명도 건전지의 타입과 개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가령 D사이즈 배터리를 사용한 제품은 건전지 개수에 띠라 건전지가 2개면 맥라이트 2D-CELL로 부르면 되었다. 미국인들의 실용성과 무심함은 어떤 때는 실소를 자아내지만 간혹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똑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정에서 건전지를 바꿔 끼우기 위해서 전자 제품을 이리저리 살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맥라이트의 이런 명칭은 엉뚱한 건전지를 사오거나 건전지 크기를 손가락으로 유지한채 가게로 뛰어갈 필요가 없게 만든다. 

꽤 특별하면서 대단한 스토리를 가질 것 같은 맥라이트의 시작은 아메리칸 드림의 결정체였다. 대공황 시절에 뉴욕에서 태어난 토니 맥리카(Tony Maglica)는 크로아티아 출신 어머니를 따라 크로아티아로 건너가 청소년기를 보낸다. 2차대전 이 후에 공산주의를 피해 1950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맥리카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유럽에서 성장하며 배웠던 앞선 유럽의 기술을 가진 기계 기술자였다.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어렵게 모았던 125달러를 가지고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1974년, 자신의 이름에서 딴 글자와 '기구'라는 말을 합친 절대적으로 창의성이 부족한 회사명인 '맥 인스트루먼트'를 설립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순돌이네 전파상'정도의 작명 센스. 손기술이 뛰어났던지 사업 초기부터 이름을 알렸던 맥리카는 처음에는 주로 산업체에 정밀 도구를 납품하는 일을 하였으나 얼마 후 맥리카는 항공 우주용과 군용 정밀 산업 기계를 직접 제작하여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맥리카는 그 동안의 산업 노하우로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게 된다. 그 노하우는 알루미늄이었고 새로운 분야는 플래시 라이트와 같은 보안 산업이었다 .

맥 인스트루먼트는 1979년에 경찰관과 소방관들을 위해 회사의 노하우가 집결하여 제작한 알루미늄 합금의 플래시라이트 '맥라이트(Mag-Lite)'를 출시했다. 당시로서는 전문가용 제품으로 등장했던 까닭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제품을 직접 사용한 경찰관과 소방관들의 입 소문을 통해서 맥라이트 플래시라이트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호평에 따라 대중들도 가정용이나 레저 등의 분야에서 점차 사용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1982년에는 충전이 가능한 '맥라이트 리차저블 시스템'을 출시했다. 지금이야 전자 제품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80년대 초만해도 충전, 더군다나 플래시 라이트를 충전한다는 개념은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1984년에는 AA배터리를 사용하는 '미니 맥라이트(Mini Maglite)'와 1987년에는 AAA 배터리를 사용하는 더 작은 크기의 '미니 맥라이트'를 출시했다. 이렇게 작은 크기로 플래시라이트의 기능을 한다는 자체도 역시 혁신적이어서 업계에 파란을 몰고 왔다. 



성능보다는 내구성이 핵심


맥라이트의 핵심은 플래시라이트로서의 성능보다는 내구성에 기인한다. 수 많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이유는 한결 같았다. 아무리 던지고 밟히고 차로 깔아뭉개도 불이 켜진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완전히 녹에 뒤덮혔는데 건전지를 넣었더니 불이 들어오더라 같은 것은 맥라이트에 얽힌 수 많은 미담 중에서 아주 흔한 미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내구성의 핵심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외형과 특수한 아노다이징 기술에 있다. 최근 흔하게 볼 수 있는 저가형 중국산 플래시라이트의 경우 아노다이징이 쉽게 벗겨지거나 안쪽에는 아노다이징이 안된 경우도 있다. 맥라이트는 외형의 파이프 구조 안쪽과 바깥쪽 모두 아노다이징이 두텁게 처리가 되어 있어 스크래치에 강하고 오랫동안 내구성을 유지 할 수 있다.

맥라이트가 특별한 것은 단지 내구성 뿐만이 아니었다. 항상 여분의 전구가 뒷부분 배터리 커버에 있다는점, 잠깐의 소나기 정도는 맞아도 문제없는 생활방수가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머리를 완전히 열어서 빼내면 이른바 '캔들모드(Candle Mode)'라는 촛불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 점이 기존 플래시 라이트들과 차별점이다.

잠깐 옛날 이야기를 해 보자. 인터넷 이전에 PC통신 시절이다. PC통신의 다양한 모임 중에서 당시에 조금은 독특한 모임이 있었다. 모형 총기류를 모으고 멀티툴을 좋아하고 밀리터리 이야기에 흥분하며 더러는 서바이벌 게임까지 참가하는 그야말로 이상한 아저씨들의 모임. 지금 같았으면 방송도타고 칭송까지 받겠지만 당시엔 돌이나 안 던지면 다행이었던 특별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임에 참가하는 아저씨들의 공통점 때문이다. 모두들 차에 뒤편이나 트렁크에 둔탁한 쇠몽둥이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몽둥이의 정체가 맥라이트 6-CELL D라는 물건이었다. D사이즈 배터리가 무려 6개나 들어가는 무지막지한 물건이었다. 왜 그리 한결같이 맥라이트 6-CELL D를 가지고 다녔는지 지금도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다만 무언가 빛을 비춰보려는 목적은 아니었을 것 같다. 

20세기까지 전성기를 보냈던 맥라이트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나타나는 쇠퇴의 경향을 거스를 수 없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작은 크기와 무게로 장비를 오랜 시간 사용이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LED 라이트는 적은 전력을 소비하면서도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결국 무거운 무게와 부피로 인한 휴대의 한계, 그리고 LED에 비해 밝지 않은 빛은 자연스런 쇠퇴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경찰과 같은 법 집행기관에서도 배터리 가격으로 인한 유지비와 무거운 무게가 부담이었다. 실무선에서도 가뜩이나 많아지는 전자 장비들로 인해 사용을 기피하거나 무게가 가벼운 제품을 찾는 전문가들도 많아서 조금은 어색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또한 예전에는 영화상에서 자주 등장 하는 주요 소품 중 하나였지만 요즘은 쉽게 볼 수 없는 점도 맥라이트의 하락세를 대변하고 있다. 사실 스마트폰에 붙은 플래쉬라이트가 가장 큰 경쟁자이기도 하다. 전혀 관련이 없을 거 같던 스마트폰의 피해자 중에 하나가 맥라이트라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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