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서평] 많아지면 달라진다 - 기술 <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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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서평] 많아지면 달라진다 - 기술 < 사람
  • by 김정철
나는 21세기 한국 인터넷이 만들어낸 최고의 콘텐츠는 ‘베댓’이라고 생각한다. 댓글이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용자 창작 콘텐츠다. 대부분의 베댓은 기사보다 재미있으며 종종 기사보다 더 유익하다. 나는 베댓의 재치 앞에서 종종 아연해질 때가 있다. 내가 재치 있고 날카로운 표현을 하나쯤 만들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선 반대편에는 재치 있는 표현을 만들어낼 잠재 댓글러가 수천 명이 있다. 수천 명이 하나씩만 제대로 된 걸 만들어도 엄청난 게 나올 것이다.

당신이 꼭 재치 있는 베플 생산자가 아니어도 답글이 힘있는 콘텐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당신이 뭔가 댓글을 달기만 한다면 당신이 만들어낸 n+1개의 댓글은 그 자체로 그 기사가 읽을 만하다는 보증이 된다. 이 원고도 좋아요 2000개에 공유 700회, 댓글 300개가 달린다면 그 자체로 없던 조회수가 또 생길 것이다.

댓글이 사람을 모으고 누적 댓글 수는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된다. ‘댓글 보러 들어왔습니다’가 단적인 예 아닌가. 전통적인 저널리즘 시스템에서 기사를 생산해온 사람들에겐 치욕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세상이 그렇게 됐는걸.

하지만 댓글이 사람을 끌어 모을 거라는 걸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가 예상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공급자의 예상 바깥에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존에 일어난 일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는 데 서투르다. 기술/서비스/물건을 쓰는 사람은 그걸 만든 사람의 예측을 벗어날 때가 많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클레이 셔키의 책 <많아지면 달라진다>의 주된 주제다. 클레이 셔키는 뉴욕대학교 언론대학원 교수로, 인터넷 기술을 통해 달라진 사람들의 행동과 그 이유를 연구한다. 지금까지 이 기획에서 소개한 사람처럼 기술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인물은 아닌 셈이다.

보통 독자에게는 이쪽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 뭐가 더 빨라지고 새로운 무선 표준이 어떻고 같은 이야기보다는 왜 어떤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많이 하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팬픽 같은 걸 쓰는지가 더 궁금하지 않겠나. 더 많은 사람들이 후자에 더 직접적으로 해당하니까. 2010년작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인터넷이 가져온 여러 가지 변화 중 참여에 접근한다.

이 참여를 설명하기 위해 클레이 셔키는 아주 많은 예를 든다. 그 예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 퍼져 있다. 그는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시작될 15세기의 독일과 모두 술에 절어 있던 18세기의 런던,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일어난 촛불시위와 인터넷을 통한 카우치 서핑, 해리 포터를 주제로 하는 50만 개의 팬 픽션 등 별별 예를 끌어온다.

작가의 주장은 간단하다. 사람들에게는 이어지고, 나누고, 만들어내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 즉 연결과 공유와 생산은 그 자체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꼭 돈을 줘야 연결하고 공유하고 생산하는 건 아니다. 21세기의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는 많은 사람의 남는 시간과 재능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게 되었다. 근본적인 욕구가 있고 판이 있으니 어떤 일들이 일어나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꾼다. 대표적인 예가 위키피디아다. 간단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저 간단한 주장이 실제 상황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점에 이 책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클레이 셔키는 너무 확실해 보이는 일들이 사실 우연으로 인한 편견이라고 주장한다. 우연과 편견으로 뭔가가 굳어졌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바꿀 수 없는 이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문 작가나 편집자는 활자 인쇄가 비용이 드는 일이다 보니 제대로 된 책을 만들기 위해 생긴 직종이다. 나쁜 책을 만들어서 투자금을 잃지 않기 위해 의해 생겨났다. 그렇다면 인쇄 비용이 들지 않는 출판 방식이 생겼을 때 전문 작가나 편집자의 필요성은 줄어든다.

이론적으로 옳아도 현실적으로는 섬뜩한 예측이다. 나도 겁난다. 내 일이 없어진다는 건데. 하지만 온몸에 다가오는 시대를 손바닥으로 막을 수는 없다. 이 책의 각 챕터에는 수단, 동기, 기회, 문화 등의 소제목이 붙어 있다. 저자가 꼽는 세상이 변하는 요인이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단과 동기와 기회와 문화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렇게 한다.

책에서 역시 예가 나온다. 맥도날드에서 밀크셰이크 판매량을 늘리려 조사를 맡겼다. 다들 물건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제럴드 버스텔은 18시간동안 맥도날드에 앉아 손님만을 조사했다. 그는 그 결과 이른 아침에, 항상 혼자, 밀크셰이크만 사서, 안에서 먹지 않고 바로 나가는 손님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운전하면서 혼자 들고 먹기 좋은 아침식사용 음식으로 밀크셰이크가 팔려 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맥도날드가 생각한 밀크셰이크의 효용이 뭐든 아침의 밀크셰이크를 사먹는 사람들은 그런 것쯤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지금 올리는 이 원고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된 다음 ‘이 사람(실제로는 더 비하적인 표현이 쓰이겠지) 아무것도 모르고 참 편하게 먹고 사네’같은 반응이 돌아올 수도 있다. 그 역시 나(생산자)의 의도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의 원제는 ‘인지 잉여’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의 시간과 재능이라는 인지 잉여를 쓸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생겼다는 의미다. 새로 찾아온 변화니까 이 거대한 인지 잉여를 어떻게 잘 다뤄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겠다. 나보다 훨씬 똑똑한 작가의 말을 길게 인용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운영하던 미디어 환경에 20억 명이 참여하여 서로 연결되는 바람에 방향 감각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큰 변화 앞에서 우리가 훌륭한 개념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은 되도록 많은 집단이 충분히 많은 것을 시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래는 사전에 정해진 궤도 위로 뻗어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지금 당장 가능한 어떤 것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현실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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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철 jc@thege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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