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행사 '파이오니어 축제'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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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행사 '파이오니어 축제'를 아시나요?
  • by 정보라
지난 겨울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호프부르그 궁전은 시계를 1백년 전으로 돌렸다.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짝을 지어 왈츠를 추는 행사가 매주 열렸다. 5월이 되자 같은 공간이 스타트업으로 꽉 찼다. 7백년 된 고궁 호프부르그 궁전에서 겨울에 열린 행사는 ‘호프부르그 무도회 시즌’, 봄에 열린 행사는 ‘파이오니어 축제’다.

5월 24일 화요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전날 방문한 오스트리아 연방상공회의소에서 기념으로 준 우산을 들고 로비에 갔다. 영국에서 온 샬롯, 아일랜드에서 온 제스, 포르투갈에서 온 아나, 이스라엘에서 온 야론 그리고 오스트리아 연방상공회의소 영국 지부에서 일하는 모니카를 만나 호프부르그에 함께 걸어갔다. 야론을 빼곤 다들 나처럼 어제 받은 우산을 썼다. 누가봐도 한 팀으로 보였을게다.

호프부르그는 13세기에 세워진 왕궁이다. 살뜰히 가꿔야 할 유적인데 비엔나 시는 이 왕궁을 이모저모로 쓴다. 국립도서관, 현직 대통령 관저, 뜰과 건물 한 채를 외부에 개방해 각종 행사를 연다. 호프부르그 무도회파이오니어 축제가 대표적이다.



무도회가 열리는 왕궁이 있는 오스트리아 빈


호프부르그 무도회는 겨울 내 매주 열린다. 그 옛날 사교 파티처럼 네트워크 장 성격이 강한데 변호사의 무도회, 커피집 운영하는 사람의 무도회, 의사의 무도회처럼 업종별 행사로 열린다. 이번 겨울에는 엔지니어의 무도회, 기술 산업 종사자의 무도회가 예정되어 있다.

[2015년 새해 맞이 파티 모습. 사진: https://www.hofburgsilvesterball.com]

오스트리아 빈에 와서 대화를 나눈 오스트리아 사람은, 모두 이 무도회를 알고 있었다. 가봤다고 한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고, 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은 ‘비싸서 안 가봤다’고 했다. 드레스코드가 깐깐하고 (예를 들어 소매 없는 드레스를 입으면 반드시 위에 드레스용 볼레로를 걸치거나 팔꿈치를 덮는 장갑을 껴야 한다. 남성은 턱시도 색깔까지 정한다.) 의상 구입 혹은 대여비가 만만찮고, 입장료까지 있기 때문이다. 다녀왔다고 한 사람은 나이를 묻지 않았으나 40-50대 같은데 자기 또래는 어릴 적 모두 왈츠를 배웠다고 했다.

[호프부르그 왕궁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가려면 이렇게 입어야 한다. 여성은 드레스 색깔을 마음대로 골라도 되어서 그나마 자유롭다.]

5월 오스트리아 빈은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이 ‘딱 좋은 때’라고 말하는 시기다. 이틀 아침 모두 비가 내리고 어두컴컴한데 다들 늦게 일어났던 모양이다. 어제 아침에 호프부르그에 들어가 저녁 7시가 되어 나왔는데 그때 날씨는 매우 좋았다.



왕궁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행사 '파이오니어 축제'


호프부르그는 5월 24일부터 25일 유럽의 스타트업으로 꽉 찬다. 왕궁 전체를 행사장으로 쓰는 게 아니고 건물 일부만 사용하기 때문에 정말 꽉 찼다. 축제 스태프는 2500명이 등록했다고 했는데 그보다 더 많이 온 것처럼 느꼈다. 오래된 건물이어서 복도가 좁고, 홀이 신식 건물만큼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코엑스나 킨텍스에서 같은 규모로 열었다면 휑한 느낌이었으리라.

파이오니어 축제는 올해 5회를 맞이했다. 역사가 길지 않은데 참가자 면면이 다양하다. 유럽의 스타트업은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에 몰린 줄 알았는데 구석구석 흩어져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온 스카우티는 야구 투수 출신이 만든 회사다. 구속을 측정하는 소형 스피드건과 구속과 제구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앱을 준비 중이다. 대표인 마히 우한은 구속과 제구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하지 못한 뼈아픈 경험을 사업으로 연결했다. 

[스카우티 공동창업자인 미하와 마히다]

디지털 노마드 족의 포시즌 호텔 격인 리포즈는 불가리아에 있다. 프리랜서나 창업자가 주위를 환기하며 일할 기운을 얻도록 숙식과 운동 프로그램, 워크숍을 1주일과 2주일 상품으로 구성했다. 

[불가리아에 있는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빌라 '리포즈']

스포츠카 같은 자전거를 만드는 오노바이크는 세르비아 회사다. 부품을 영국과 독일 등에서 공수해 메이드 인 유럽 제품을 만든다. 런던에서 차로 2시간 반 거리에 있는 브릭스톨이란 도시에서 온 스타트업도 있었다. 

[세르비아의 자전거 회사 '오노바이크']

울트라햅틱은 립모션과 음파로 허공에 있는 손의 움직임을 측정한다. 이 기술을 전기나 가스레인지, 병원 엘리베이터처럼 위생과 안전에 민감한 분야에 적용하려고 준비 중이다.



리포우즈의 대표 로지타는 재미난 얘기를 했다. 불가리아에도 일레븐런치허브란 스타트업 육성기관이 있고, 기업 투자는 불가리아 화폐가 아닌 유로화로 한다고 했다. “불가리아 하면 무얼 떠올리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요거트!!!”라고 대답한 게 머쓱했다. 그는 리포우즈 때문에라도 세계의 스타트업이 불가리아에 방문하고, 이곳에서 사업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게 그들의 목표라고 했다. 리포우즈는 6월에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만난 팀이 많지 않은데도 유럽의 스타트업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엮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스카우티가 가장 좋은 예다. 스카우티는 슬로베니아에 본사가 있다. 창업자는 물론 모든 팀원이 슬로베니아에 있다. 인큐베이팅은 불가리아의 일레븐과 독일 하드웨어닷코‘호프부르그 무도회 시즌’에서 받았다. 제품 출시를 3개월 앞두고 있는데 미국과 한국, 대만, 일본을 주요 시장으로 삼는다.



오스트리아, 유럽 전역이 비행기로 3시간


행사 첫날의 저녁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스타트업 지구로 통하는 7구역에서 하기로 했다. 호스트는 오스트리아 연방 상공회의소였다. 프레스 투어를 계획하고 현지 가이드를 모니카가 마침 내 옆에 앉았다. 그에게 “유럽의 스타트업 분위기가 이런 줄 상상도 못했고, 그 기업들이 오스트리아 빈에 모일 줄은 더 몰랐다”고 말했더니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동유럽과 독일어권 국가가 중심에 있는 유럽 지도였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허브다. 동유럽과 중부 유럽(CEE)이 서유럽으로 가는 관문인데 오스트리아가 독일어권(DACH)이어서 CEE와 DACH의 중심이 된다.”

오스트리아는 유럽 모든 나라를 비행기로 3시간 안에 갈 수 있고, 국제공항 6개는 동유럽 35개 공항과 연결됐다. 지리적 특징 때문만이 아니라 금융, 비즈니스 컨설팅, 세무업 종사자도 주변국의 상황에 맞춰 일하는 분위기도 있다. 유로존이지만, 물가가 비싼 편이 아니고 법인세는 25%로 유럽 내에서 낮은 편에 속한다. 특히 빈은 대중교통 1년 이용권이 365유로(하루에 1유로=1300원)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를 관광지로만 여겼는데 이 설명을 들으니 신선했다. 그는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오스트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는데 다들 그 브랜드를 오스트리아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말한 회사는 스와로브스키와 레드불이었다. 실질적으로 유럽 산업의 허브이자, 스타트업의 허브인데 그 이미지가 드러나지 않는 게 안타깝다는 얘기였다. 함께 온 아일랜드 기자도 이번 출장을 오기 전까지 잘 몰랐다고 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인큐베이터가 25곳이 있고, 코워킹 스페이스는 100곳이 넘는다. 오스트리아에 사무실을 둔 스타트업은 400개가 넘는다. 투자사는 40곳, 해커 공간이라고 하여 개발자 또는 창업자가 쓸 수 있는 공간은 10곳이 있다. (오스트리아 스타트업 지도 참고)


[오스트리아 연방 상공회의소 작성. 2013년 기준 자료.]

관광지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해서 오스트리아가 유럽 스타트업의 허브라는 인식은, 정부의 기대만큼 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 산업 구조가 서비스업에 편중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GDP의 70%는 서비스업에서 나오는데 농업은 1%, 기타 산업은 30%에 못미친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 연방 상공회의소는 꽤 공격적으로 스타트업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중국과 한국, 일본, 이스라엘에서 파이오니어 행사를 열거나 스타트업 교환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스타트업 열기가 뜨거운 나라로 유명한 곳들이다.

‘K 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란 프로그램을 통해 오스트리아 기업이 삼성이나 현대, 네이버, 카카오 등과 만날 기회를 만든다. 이 프로그램은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데 해외 기업에 한국 기업의 멘토십과 지원금을 제공한다. 거꾸로 한국 기업이 유럽으로 나가는 걸 돕는 프로그램도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한국연구재단, 미래창조과학부가 만들고 운영하는 KIC(Korea Innovation Center)는 유럽과 베이징, 워싱턴, 실리콘밸리 등 세계 주요 지역에 한국 기업을 보낸다. 이중 KIC유럽은 한국 스타트업 10곳을 선발해 올해 파이오니어 축제에 보냈다.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빈 시와 협약을 맺고 2014년부터 한 개 팀을 3개월 동안 빈에 보낸다. ‘비엔나 스타트업 웰컴 패키지’라는 프로그램인데 올해는 북이오를 서비스하는 비비디부가 선정됐다.

오스트리아의 스타트업 분위기를 더 알고 싶다면, 오스트리아 연방 상공회의소가 운영하는 '오스트리아 스타트업' 웹사이트에 방문하길 추천한다.


[파이오니어 축제는 대략 이런 분위기다. 앤틱한 샹들리제와 금색 몰딩이 스타트업 행사와 꽤나 잘 어울린다.]


[리뷰전문 유튜브 채널 더기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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