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서평] 굿바이 소니 '소니는 어떻게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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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서평] 굿바이 소니 '소니는 어떻게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는가?'
  • by 김정철

난 이 책의 제목을 한국측 출판사에서 바꾼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굿바이 소니>는 어감이 너무 강해서. 하지만 확인해본 이 책의 원제는 한국어판보다 더 센 <안녕! 우리들의 소니さよなら! 僕らのソニー>. 저 제목이라면 굿바이 소니 정도의 변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소니가 한국의 우리들과 강하게 엮여 있는 건 아니니까(물론 우리 나라에도 소니의 열광적인 팬들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수가 많지는 않으실 테니 이해 부탁드린다).

일본 사람이 소니에게 ‘안녕! 우리들의 소니’라고 말하는 건 이런 것 아닐까.
1) 소니는 ‘우리들의’ 소니였을 정도로 일본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2)그런데 ‘우리들의 소니’는 이제 없다.
3)지금의 소니는 안녕이란 말에 느낌표를 붙일 정도로 일본 사람과 멀리 헤어지고 있다.
저자인 다테이시 야스노리 씨는 이 세 가지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한다. 1950년생 저자는 1988년부터 독립해 30여 권에 가까운 저서를 썼다. <굿바이 소니>를 비롯해 소니에 대한 책만 5권이 넘는다. 그나저나 1988년부터 독립했다니 대단하다. 나는 네 달 독립했는데도 곤란한데… 책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 책의 1장은 저자가 소니를 처음 만난 순간에서 시작된다. 1961년이었다는 그 때의 에피소드는 꽤 감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소니를 골랐다. 아들이 소니를 고르자 그의 아버지도 “역시 소니는 소리가 확연히 다르지”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점원도 “소니를 사면 문제없을 겁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케이블 TV 광고 같은 에피소드지만 어린 시절에 좋아 보이던 물건은 그 세대의 평생에 걸쳐 아주 강한 영향을 미친다(나는 최근의 90년대 운동화 유행도 그래서라고 생각한다). 이 일화가 맨 앞에 있는 건 이런 이야기가 일본의 그 세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괜히 ‘우리들의 소니’가 아니겠지.

책에 따르면 그때의 소니는 이미 ‘고성능, 고기능, 고품질’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꼽는 소니의 장점 역시 고성능, 고기능, 고품질이다. 이 특징으로 소니는 미국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책에 의하면 소니가 처음 미국에 진출할 때는 ‘메이드 인 저팬’의 이미지가 싸구려와 저질이었다고 한다. 세상은 참 빨리 바뀐다. 소니는 이러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훌륭한 물건으로 승부했다. 옛날 일이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일본의 히타치나 파나소닉에도 밀리던 소니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큰 회사가 되었다. 이때까지가 저자가 말하는 ‘우리들의 소니’ 시절이다.

세상은 정말 빨리 바뀐다. 소니는 아주 깊은 침체기를 겪는다. 창업자가 타계하고 영국 출신의 CEO 하워드 스트링거가 부임하며 소니의 실적은 점차 나빠진다. 저자는 소니 안팎의 여러 사람들과 만난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우리들의 소니’에게 ‘안녕!’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이 책에 사실 기술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기업의 근간을 이루는 사람들의 드나듦에 주목한다. 누구 다음에 누가 회사의 대세가 되었는지, 그 사람이 바뀌면서 간부진이나 사업부에는 어떤 경향이 일어났는지,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사내 정치나 소위 말하는 엽계 동향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일관적으로 지적하는 소니 몰락의 큰 원인은 기술 경시다. 기술 경시는 기술 인력 경시 혹은 기술 예산 축소로 나타난다. 소니 정도의 거대한 조직이라면 한 방에 회사가 흔들릴 정도로 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씩 쌓이는 잘못된 판단들이 조금씩 소니의 활기찬 DNA를 파괴한다. 기술의 소니는 스트링거 체제 아래에서 네트워크와 콘텐츠 위주의 소니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사실상 제 손으로 최고급 엔지니어를 타사로 보낸다. 이때 소니의 엔지니어를 영입한 회사는 삼성과 엘지는 물론 폭스콘도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소니의 전 CEO 이데이 노부유키의 실패를 말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데이는 소니 사장 후반인 1990년대 말부터 다보스 포럼의 공동 의장이 되거나 미국의 선밸리 회의에 초대받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세계를 이끄는 기업가들의 모임이다. 저자는 이 일에 아주 차가운 평가를 내린다. ‘이데이는 매년 개최되는 선밸리 회의에 출석해 초일류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에 중독되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듯했다. (중략) 나는 이때 이데이가 자기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이 다음 말도 조금 더 볼 가치가 있다. 이데이는 경영자의 추상화 능력을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추상화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에서 공통점을 골라내 체계화하는 것’인데 ‘경영자, 즉 실업가는 모순과 문제로 뒤범벅된 현실과 대치하며 그 속에서 고유의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추상화라는 큰 그림 그리기도 좋지만 한 회사를 이끄는 기업가가 해야 할 구체적인 일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추상화에 빠져 자신의 구체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일본의 이데이만은 아닐 것이다.

이데이는 결국 기업가로의 자신을 증명하지 찾지 못했다. 그는 2005년 소니의 부진을 책임지고 사퇴했다. 소니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하워드 스트링거 신임 CEO 체제로 전환되고, 그 후로 더 큰 혼란과 추락을 겪게 된다. ‘우리들의 소니’ 세대인 저자는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은 채 스트링거 체제의 소니를 기록한다.

<굿바이 소니>의 일본판이 나온 시점은 2011년, 한국어판이 나온 시점도 2012년이다. 이 책은 현재 회장 히라이 카즈오가 회장에 부임한 직후 부분에서 끝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히라이 부사장은 엔터테인먼트 부분의 경력이 많지만, 소니는 제조회사이다. 일본에서의 제조 기술과 상품 제조는 앞으로도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한 신문기사가 발췌된다.

저자는 ‘히라이는 ‘우리들의 소니’를 어디로 안내하려는 것일까?’라고 끝내며 책을 마무리짓지만 책 바깥의 우리는 2016년의 소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히라이 체제의 소니는 5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비결은 역시 기술을 다시 소중히 여긴 것 아닐까.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기술을 소중히 하고, 기술 개발의 도전을 이어나가, (중략) 매력적인 제품 개발에 힘써, 압도적인 놀라움과 즐거움을 세계에게 보여 줄 것입니다.” 히라이 카즈오의 첫 연설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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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철
김정철 jc@thege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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