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깨고 항해하는 쇄빙선 '아라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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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깨고 항해하는 쇄빙선 '아라온호'
  • by 정보라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아라온호 홍보물]

7월이었다.  목포항도 가보고 제주항도 가봤는데 인천항은 그때에 처음 갔다. '연안부두에서 소주 한 잔 해요'란 말을 노랫말처럼 하고 다녔는데 그 연안부두를 진짜로 갔다.

인천항은 국제 터미널이다. 이곳을 드나들려면 인천국제공항의 면세 구역을 가듯이 신분증을 내고 짐검사를 해야 한다. 실제 배를 타는 게 아니면 이 절차는 약식으로 이뤄지지만, 절차는 절차, 한 번 들어가면 나왔다 들어가는 게 편하지 않다. 출입증을 매번 제출해야 한다. 이 인천항이 아라온호의 모항이다.

[아라온호가 인천항에 정박한 모습은 찍을 수 없었다. 모형 사진으로 대신한다.]

아라온호는 승무원 포함 85명을 태울 수 있는 바다 위 연구소다. 길이는 100 미터가 넘고 무게는 7천 톤이 넘으며, 배를 건조하는 데 1080억원이 들었다. 헬기 1대를 실을 수 있고 바지선을 장착했다. 한 번 주유하면 기름값만 10억 원인데 1년 기름값은 70~80억 원에 이른다. 이 정도이면 더기어가 다루는 가장 큰 기기가 아닐까.

[조타실은 흡사 오락실 같다. ]

아라온호는 요즘 자동차와 IT 미디어가 앞다퉈 다루는 자율운행 기능을 달았다. 두꺼운 빙하를 깨면 그때마다 배의 방향이 바뀔텐데 배가 흔들려도 가고자 하는 대로 가기 위해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모든 게 자동이어서 아라온호에는 키가 없다. 조타실에 들어서자마자 김현식 선장에게 "저게 키인가요", "이게 키인가요" 물었는데 "키는 없습니다"란 대답을 들었다. 선장 의자는 있었다. 원목에 바테이블용 의자처럼 높다랗고 쿠션감이 있는 의자였다. 영화 타이타닉에선 선장이 사기 찻잔에 홍차를 타서 레몬을 넣어 마시던데 아라온호에는 전기 주전자와 종이컵, 인스턴트 커피가 있었다.

아라온호는 바다를 돌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정원 85명에서 선원 25명을 빼면 연구원은 최대 60명이 탈 수 있다. 연구원들이 아라온 호를 타면 바다를 연구한다. 아라온호는 이 힘든 곳으로 연구원을 실어 나른다. 운편의 역할뿐 아니라 바다 위 연구소 역할도 한다. 아라온호는 해마다 10월께 출항하여 남극 장보고화학기지에 물자를 보급하고 남극 대륙 근처를 돌면서 연구 항해를 한다. 봄이 끝나는 5월에 한국으로 돌아와 배를 점검하고 7월에 북극으로 연구 항해를 떠난다. 다시 인천항으로 돌아와 남극 항해를 준비한다. (아라온호는 항해 일정을 웹에 공개한다. 궁금하면 언제든 보자.)

[인천항에 정박한 아라온호]

아라온호에서 가능한 연구활동은 극지 환경 변화 관찰과 대기와 오존층 연구, 고해양과 고기후 연구, 해양생물자원 개발 연구, 지질 환경 연구 등 다양하다. 연구실은 건식과 습식으로 나뉘었는데 16개가 있다. 극지연구소장에게 직접 설명을 듣고 또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 어렵다.

아라온호에 실린 연구용 전문 장비는 20가지가 넘는다. 유속 측정기, 어류 탐지기, 음파를 이용한 수심 측정기, 퇴적물 구조와 두께 측정기, 염분측정기, 중력측정기, 자력측정기, 파고측정기, 해저질 채취기, 실시간으로 염분과 온도를 측정하는 장치, 해양퇴적물 시추기 등이 있다. 원시 지구의 역사를 간직한 깊은 바다를 탐색하는 건 원격 제어장치가 한다. 그 장치를 바다 밑으로 보낼 밧줄은 튼튼하되 가벼워야 한다. 튼튼하기만 하고 무겁다면 아로온호가 버티지 못한다.

[해수를 수집하는 기구. 설정한 각 수심에 도달할 때마다 원통의 입구를 돌아가며 열면, 수심별 해수를 수집할 수 있다.]

조타실부터 갑판에 있는 케이블과 위성 안테나까지 보는 동안 참으로 더웠다. 여름 직전의 아라온호 갑판은 요즘 날씨처럼 뜨거웠다. 그 열기에 정신이 아득해지려는데 정복을 입은 선원들이 안타까워 보였다. 다행히 선원복을 늘 입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처럼 손님이 오지 않으면. 역시 아무도 오지 않는 게 이분들에겐 나으려나 싶은데 다들 씨익 웃으며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건데 이런 일로 힘들다는 생각 안 한다는 말을 했다.

[아라온호 김현식 선장]

그렇다. 아라온호는 국가가 만들어 국가가 관리하는 배다. 아라온호의 주인은 극지연구소, 바로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운영하는 곳이다. 극지연구소는 해양수산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부설 기관이다. 한국은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준공한 뒤 남극과 북극에 연구소 3개를 운영 중이다. 본부는 인천 송도에 있다. 극지연구소는 2002년 북극 다산과학기지, 2014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를 세웠다. 아라온호도 극지연구소의 주요 연구소에 속하는데 움직이는 연구소라고 보면 된다.

[아라온호 연구실에 있는 의자. 평범해 보이지만, 선체가 기울어도 움직이지 않도록 바닥은 고무로 마감하고 무게 중심을 낮췄다. 들어서 옮기지 않으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극지연구소의 연구원은 아라온호에 상주하지 않는다. 손님을 맞이하던 아라온호에는 인천에 있는 본부에서 온 홍보담당 직원과 김예동 전 극지연구소장(올 여름 새 연구소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승무원이 있었다. 연구원은 아라온호가 항해할 때에만 오른다. 인천항에서 출항할 때부터 함께하지도 않는다. 주요 연구터인 극지역 바다 근처에서 합류한다. 극지연구소 직원이라고 모두 아라온호를 타는 게 아니어서 직원이어도 배 안에서 길을 헤매기 일쑤다. 그러니 아라온호를 탈 기회를 얻는다면 사양말고 그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

[아라온호 내 숙소. 2인 1실 구조이며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다. 토요코인의 2인실보다 넓다.]

김예동 전 소장은 과학기지에 가고 싶어하는 연구원이 많지 않다고 했다. 한 번 가면 짧으면 몇 개월, 길면 1년을 남극 또는 북극에서 지내는데 나이가 차면 부모님이 연로하여 곁을 떠나기가 쉽지 않고, 젊으면 어린 자녀 또는 결혼할 걱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남극의 삶은 달이나 화성에 간 우주인의 생활과 비슷하다. 밖은 황량하고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괴롭다. 결국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소수의 사람과 몇 개월을 보낸다. 인내심을 시험하는 날들이다. (극지연구소의 웹진에는 월동대원이 극 지방에서 찾은 여가 활동이 간간이 올라온다. 어느 활동을 하든 다들 수준급이 되어 돌아간다고 한다.) 그 시간을 채우고자 기증 의사를 밝히는 기업이 여럿 있다. 리디북스는 그 중 한 곳이다. 전자책 단말기 페이퍼 1백대와 총 300만원어치 쿠폰을 기증했다. 골프존은 스크린골프장을 기증, 설치했다. 두 회사는 극지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월동대원이 여가 시간을 보낼 거리를 보탰다. 리디북스의 페이퍼는 아라온호 승무원도 쓸 수 있어 항해 중 무료한 시간을 독서로 때울 수 있다.

지난 7월20일 아라온호는 출항했다. 북극의 동시베리아해, 베링해, 척치해에서 탐사 연구를 하고 돌아온다. 67일의 긴 여정이다. 아라온호가 탐사할 바다는 한 반도 바로 위 러시아 북쪽 바다와 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 알래스카 위에 있다. 이곳의 온도에 따라 한국의 겨울 기온이 달라진다. 아라온호가 항해하여 얻은 연구 결과이다. 아라온호는 가을에 돌아와 남극 항해를 준비할 것이다.

[극지연구소의 연보 표지는 여름 수박보다 시원하다.]

[2012년 극지연구소 연례 보고서는 월동대원이 찍은 사진을 화보로 넣었다. 더위를 날릴 사진이 많다.]


[리뷰전문 유튜브 채널 더기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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