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와 미국산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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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와 미국산 아이폰
  • by 이상우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실리콘밸리 테크기업 수장은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 겸 페이스북 이사 정도였다. 대선 기간 내내 트럼프는 고학력 이민자들이 많은 실리콘밸리와 상충되는 이민 정책을 언급했고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면서 자국 내 생산을 늘리라고 윽박질렀다. 실리콘밸리의 제품들의 가격 상승은 볼 보듯 뻔하다.


[이미지 출처 : CNN테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임 8년 동안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구글, 애플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은 기술 혁신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주도했다. 특히, 앱 생태계는 국경을 초월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했다. 개발자가 앱 마켓에 등록한 1,000원짜리 유료 앱이 1주일 동안 10만 명이 다운로드하면 어떻게 될까. 개발자는 7,000만 원의 수입이 발생한다. 앱 마켓은 3,000만 원의 수수료를 수익으로 챙긴다. 애플 앱 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같은 국경 없는 앱 마켓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오바마 재임 기간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은 기술 대중화로 부의 새로운 축적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 이상적인 비즈니스 환경은 위기에 놓였다.

 


[이미지 출처 : CNN머니]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업무 첫날 제조업을 미국으로 찾아오겠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추진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또 공식 업무를 시작하기 전 포드·다우케미컬·벨 등 제조업체 수장들과 조찬 자리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미국에 머무는 것"이고 "외국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제품엔 막대한 국경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포드는 이미 멕시코에 지을 새 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했고, 도요타는 트럼프의 자국 이익 정책에 못 이겨 5년간 미국에 100억 달러(약 12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고 결국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멕시코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에 35%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해 왔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며 결국 고용과 투자가 미국으로 몰릴 것이라는 게 트럼프의 구상이다. 애플도 예외일 수 없다.



미국산 아이폰, 가격 '↑' 일자리 'NO'

애플은 FBI에 비협조적이고 미국 내 고용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당선 전부터 종종 트럼프의 비난의 대상이었다. 전 세계 시가 총액 1위의 애플이 아이폰을 미국에서 제조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 미국 내 자동차 산업은 경쟁이 치열하고 그래서 관세에 따른 가격 경쟁력 저하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스마트폰 시장의 이익 90%를 가져가는 애플은 굳이 미국 내 제조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부품 업체가 몰려 있고 값싼 인력 수급이 쉬운 중국에서 제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미국으로 항공 운송하는 비용도 부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이폰 제조와 플랫폼 비즈니스는 산업의 특성은 물론 인력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특히, 후자는 IT 전문 지식과 오랜 경험이 요구된다. 단순노동력으로 해결될 산업이 아니라는 의미다. 여기서 실리콘밸리와 트럼프의 온도차가 감지된다.

 


미국에서 아이폰을 조립하는 경우 대만 폭스콘이 미국 내에 공장을 세우고 조립 노하우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등의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649달러에 판매되는 아이폰 7 32GB 모델의 조립 원가는 225달러에서 30~40달러 정도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는 아이폰이 미국에서 제조된다면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자 불이익쯤은 "사소한 일"이라며 개의치 않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아이폰의 미국 내 제조가 트럼프의 바람처럼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지 의문이다. 현재 아이폰 제조는 인간보다 로봇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폭스콘 공장 한 군 데에서만 6만 명의 직원이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수천 명의 미국인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작업을 할 로봇을 구입하고, 조립 공장을 감독할 훨씬 적은 수의 숙련된 엔지니어를 고용하면 된다는 의미다. 결국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더라도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은 낮다. 대신 로봇에 투자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에 투자해야 하므로 아이폰 가격만 높아질 뿐이다.

참고 링크 : 폭스콘, 로봇 도입으로 6만 명 감원


사실 가격 상승보다 사람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H-1B 비자가 버팀목이다. 이 이민취업비자를 통해 실리콘밸리는 인도, 중국을 비롯한 IT강국 출신 기술자들을 비교적 저렴한 몸값에 채용할 수 있었다. 전문교육을 이수한 이들 이민자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앱 생태계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주도해왔다. 선거 운동기간 중 H-1B 비자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적대적인 입장을 피력한 트럼프와 실리콘밸리의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인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 단속이 강화되면 가뜩이나 심각한 실리콘밸리의 구인난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플도 대책은 세우고 있는 듯 하다. 지난해 12월 트럼프와 만난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폭스콘, 사우디국부펀드 등과 1,000억 달러 규모의 펀드 기금을 조성하고 5만 명의 고용 창출을 약속했다. 소프트뱅크가 사우디국부펀드와 손잡은 이 펀드에 애플이 10억 달러를 출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취임 전 트럼프는 팀 쿡이 아이폰의 미국 생산에 대해 "뭔가 큰일을 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고 말했다. 폭스콘에 위탁한 아이폰의 미국 생산 또는 폭스콘 산하 샤프의 새로운 디스플레이 제조 등 여러 옵션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산은 미국 내에서 유통하면 될 것이다. 미국산 아이폰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영향이 없도록 말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현재 애플이 트럼프에 회답할 시기는 1월 말 열리는 2017년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 또는 새 아이패드 출시가 예상되는 3월 이벤트가 유력하다. 별도의 일정을 잡아 발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화의 최정점에서 새로운 부의 축적 구조를 만든 애플을 포함한 실리콘밸리 테크기업들의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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